■주오구 역사 소요<11>요시다 쇼인몰후 160년 사적을 둘러싼~코즈카하라 회향인·마츠인 신사~
니혼바시코덴마초의 쥬시코엔에 「요시다 쇼인 종언의 땅」비(사진)가 있다.여기는 에도기 「덴마초 감옥」이 놓여진 곳이었다.요시다 쇼인은 1859년 10월 27일(현대력 1859년 11월 21일), 안정의 대옥에서 투옥, 처형되었다.때로는 30세의 젊음.비에는 「몸은 타토히 무사시의 노변에 썩지않는다고도 남기기 야마토혼」이라고 새겨져 있다.
처형으로부터 160년 후의 오늘, 23구 내에 존재하는 요시다 쇼인의 사적을 방문해 보고 싶다.
처형 후 매장되어, 안정의 대옥에서 함께 흩어진 동지도 묻혀 있는 고즈카하라 회향인(아라카와구)조슈 모리 번번 번번주의 별저에 문하생에 의해 개장, 창건된 마츠인 신사(세타가야구)
고즈카하라 형장터의 고쓰카하라카이칸
— 마츠인묘와 하시모토 사나이, 요리 미키자부로묘도
(사진 위)하시모토 사나이 묘소(아래)를 향해 왼쪽이 요시다 마츠인묘, 오른쪽은 라이 미키사부로 묘지
고즈카하라 회향인은, 정칭을 호코쿠산 회향원.정토종미나미센주 회향원이라고도 한다.에도기는 고즈카하라 형장이 있던 곳.1667년(1667)에 본소 회향원이 형사자 등을 공양하기 위해 개창했다고 한다.과거는 본소 회향원의 별원이었지만, 현재는 독립했다.
야스마사의 대옥에서 처형된 지사들은 정치범의 죄인으로 회향원에 묻혔다.여기에는 요시다 쇼인, 하시모토 사나이, 하시모토 사부로의 3명의 무덤이 있으며, 모두 아라카와구 등록문화재로 되어 있다.
요시다 쇼인의 무덤은 1863년(1863)에 다카스기 신작 등에 의해 세타가야구 와카바야시로 이장되어 마쓰인 신사가 건립되었으므로, 여기 회향원에 있는 것은 당시의 묘석이라고 한다.
스기타 겐하쿠나 마에노 료자와 등이 고즈카하라 형장에서 형사자의 분별에 입회해, 그것을 계기로 『해체신서』를 번역했다고 한다.본당 입구에 '관장 기념비'가 있다.
소재지=아라카와구 미나미센주 5-33-13
다카스기 신작 등이 모리 번주 별저지에 이장
- 세타가야구 와카바야시 마쓰인 신사
(사진 위)경내의 요시다 마츠인상(아래) 마츠네 선생님 타 열사묘소 토리 미키사부로, 고바야시 민부 등의 무덤도 있다.
요시다 쇼인이 덴마초 감옥에서 처형되고 나서 4년 후인 1863년(1863), 마츠인의 문하생이었던 다카스기 신작, 이토 히로부미 등에 의해 세타가야 와카바야시의 땅에 이장되었다.여기는 에도기, 조슈 모리 번번 번번주의 별저가 있던 곳으로, 오오부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882년(1882) 11월 21일, 마츠인 문하 등이 무덤을 지키고 사를 쌓아 성령을 모신 것이 마츠인 신사현재의 사전은 1928년에 건설되었다.경내에는 「마츠시타무라주쿠」가 복원되고 있다.
올해 10월 26·27일에는 동사 부근의 상가 일대에서 “제28회 하기·세타가야 마쿠스에 유신 축제”가 개최되어, 마츠인에 관련된 역사 강연회 등의 이벤트가 열렸다.또, 27일은 봉축령화고대령 마츠인 신사 미야카미야연합 와타오도 거행되었다.(@AM )
소재지=세타가야구 와카바야시 4-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