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에도 이타바시

료쿠바시 「사부」의 주인을 따라

료코쿠바시는 스미다 강에 가설된 다리로 지바시에 이르는 국도 14호선이 통과한다.

수도 고속 7호선과 병행하여 달리 동서의 교통을 담당하는 게이요 지역의 주요 간선이다.

니시기시는 주오구 히가시니혼바시 니쵸메, 히가시기시는 스미다구 료쿠니 잇쵸메

 

현재의 다리는 1932년(1932년) 준공.

교장 164.5m, 폭원 24.0m의, 3경간 게르버식 강판교이다.

2008년(2008년)에 도쿄도 선정 역사적 건축물로 선정되었다.

 

 료쿠바시 「사부」의 주인을 따라

 

차도의 가드레일에는 양국 국기관을 연상시키는 군배와 양국의 강 건너편 불꽃이 기원이라는 스미다가와 불꽃놀이를 연상시키는 불꽃놀이가 디자인되어 있다.

 

 료쿠바시 「사부」의 주인을 따라

※ 스미다가와 테라스의 제방에 내걸린, 료쿠바시의 우키요에

창가의 시기는 몇 가지 설이 있지만 1661년(1661년)이다.

당시에는 오카와라고 불리던 스미다가와에서 센주오하시에 이어 2번째의 가교가 되었다.

 

에도성의 든든한 방위를 도모하기 위해 외호리의 한층 더 외주에 해당하는 스미다가와로의 가교는 제한되고 있었다.

그러나 1657년(1657년)에 일어난 명력의 대화 때 다리가 없어 도망갈 곳을 잃은 에도 시민에게 10만명에 이르는 사상자를 낸 것으로부터 방화·방재를 주목적으로 가교되었다.

목제 다리에의 유소를 막기 위해 다리 끝에는 상설 건물을 만들지 않고 공터를 확보했다.

이것이 불제지이며, 히로코지라고 불렸다.

 

 료쿠바시 「사부」의 주인을 따라

※ 료코쿠바시 서쪽의 보도 심기에 세워진 기념비

  우에노·아사쿠사와 대등한 에도 산대 히로코지의 하나로 꼽혔다.

서쪽 채우기의 료코지는, 그 빈터에 가설의 볼거리 오두막이나 연극 오두막, 찻집 등이 늘어서, 에도 제일의 다채로 번성했다.

 

다리의 이름은 무사시국과 시모소국의 경계에 있었기 때문에 명명되었다.

동쪽의 본소는 한때 하총국에 포함되어 있었다.

1686년(1686년) 국경은 변경되었지만, 다리의 이름은 그대로 남았다.

 

「사부」의 내보내기

「사부」의 내보내기 료고쿠바시 「사부」의 그림자를 쫓아

 

수중에 야마모토 슈고로의 「사부」가 있다.

때때로 다시 사서 읽은 소설이다.

내보내기는 비에 내리는 고쿠바시를 엎드려 울면서 건너는 장면이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한다.

에도에서, 곳의 가사이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비와 눈물로 굿샤가 된 사부를, 같은 가게에 봉공하고 있는 에이지가, 달래면서 무리하게 에도 쪽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다.

 

 료쿠바시 「사부」의 주인을 따라

※ 에도 도쿄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던 료코쿠바시의 경치

다리는 좌안과 우안을 연결하는 일상생활의 편리성을 향상시키는 건축물이다.

사람이 만나 여행을 떠나는 곳이다.

다리 위나 아래를 흐르는 강을 통해 사람은 교류하고 물류가 촉진되고 정보가 통한다.

하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의 삶도 좌우하는 장소일지도 모른다.

그때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면...

처음 「사부」를 손에 넣었을 때, 나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라고 격렬하게 마음이 움직였다.

 

고후네마치의 표구집.

야나기바시의 요리점.

니혼바시 혼마치의 환전상

익숙한 마을들이 속속 나온다.

각각의 거리를 감각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시대 소설을 읽을 때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요리장에서의 3년

기장에서의 3년 료고쿠바시 「사부」의 그림자를 쫓아

※ 에도시대 말기의 쓰쿠시마 안내판 그림

소설 중에서 가장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는 장소는 이시카와 섬인 아시노기장이다.

화부 도적 개방(히츠케토우조쿠아라테카타)의 하세가와 노부타메) 통칭 헤이조가, 인족기장의 설치를 노나카 마츠다이라 사다노부에게 건의해, 건설 운영의 지휘를 맡았다

무숙자나 경죄인을 수용해 사회 복귀를 도운 후생시설이다.

 

 료쿠바시 「사부」의 주인을 따라

 

쓰쿠다 공원 내에 이시카와 섬 등대가 있다.

인족 기장터에 지어진 하얀 망루의 기념물이다.

1866년(1866년), 인족기장 봉행의 시미즈 준기(쥰키)가, 기장에서 가고 있던 유조리개의 익금을 활용해, 인족을 사용해 상야등을 쌓았다.

밤새 켜지는 불빛은 스미다가와 하구와 시나가와 앞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에 크게 기여했다.

 

 료쿠바시 「사부」의 주인을 따라

※ 료쿠바시의 활기

‘사부’는 영상이나 무대로 형태를 바꾸면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소설 속에서 나오는 말을 대사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 하고 소리내어 말했다.

 

야마모토 슈고로, 본명 시미즈 36(사토무)는, 심상 초등학교 졸업 후, 기만초의 야마모토 슈고로질점에 도제로서 정착했다.

전당포의 주인은 그를 자비하고 진학의 기회를 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탱했다.

슈고로는 받은 은의를 경애를 담아 필명으로 후세에게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