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행물'과 '내리지 않는 것'~영이쓰쿠시마와 신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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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도에서 「하행물」이라고 하면, 료가키 회선이나 통회선 등으로 「상방」에서 옮겨져 에도 미나토에서 육양된 물자의 호칭이었습니다.‘하행쌀’ ‘하행수유’ ‘하행 소금’ 등 생필품까지 ‘위방’에서 ‘내려’ 왔습니다.
「하행물」은 품질상 등의 고급품을 의미하고 있어, 말하자면 현대의 식품=수입의 브랜드라고 하는 느낌입니까.
반대로 「내리지 않는 물건」이라고 하면 「에도지회전」 「토주」등, 명산지라고는 말할 수 없는 현지의 물건, 이른바 2급품을 말했습니다.
● 신카와는 료쓰시마를 양분하고 있던 운하의 이름입니다.가와무라 미즈켄이 개삭했다고 유명하네요.이 운하의 양안 일대는 「하행주」의 수 도매상이 처마를 늘어놓았습니다.그리고 지금도 그 흔적은 볼 수 있습니다.
▲ 신카와의 흔적 비(신카와 공원)
!['하행물'과 '내리지 않는 것'~영이쓰쿠시마와 신카와](https://ko.tokuhain.chuo-kanko.or.jp/img_data/CBLOGIMG1159_2_1.jpg?20200213152259)
▲ 비의 정면(왼쪽)과 뒤쪽
● 히시가키 회선, 타루마와리선 등의 민간회선 조직에 의한 물류 루트는, 에도 시대의 상방과 에도를 잇는 물자의 수송 수단으로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그 조직은 각각의 상품별 하적 도매상과 수 도매상의 동업조합과 그 연합체가 운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 수송과 가격의 유지를 확실한 것으로 하기 위해서 조합 자체나 막부가 감시한 것이, 수송업자에 의한 「불허」나 「환적 환적」등의 밀무역행위였습니다.
게다가 이 감시역의 주체는, 배와 하안·물양장 사이의 “배(하시케) 업무”의 조합이었습니다.
!['하행물'과 '내리지 않는 것'~영이쓰쿠시마와 신카와](https://ko.tokuhain.chuo-kanko.or.jp/img_data/CBLOGIMG1159_3_1.jpeg?20200213152259)
▲ 오카와 하구의 에도 미나토(“모토로쿠에도 그림”에서)
!['하행물'과 '내리지 않는 것'~영이쓰쿠시마와 신카와](https://ko.tokuhain.chuo-kanko.or.jp/img_data/CBLOGIMG1159_4_1.jpeg?20200213152259)
▲ 신카와 사카 도매상(『에도 명소 도회』에서)
● 령이쓰시마의 마을의 역할은 「회선과 직접 교섭(장사)을 할 수 있는 한정된 마을」이었던 점에 있었습니다.구체적으로는, 제회선에 배를 부착해 야채나 소간물의 출매를 장사로 하는 「회선부선 동료」가 결성되어, 에도 미나토에 온 치이시후나(대형 와후네)에 야채·소간물을 비롯해, 돌아오는 공개에 필요로 하는 물도 공급하고 있었습니다(현재의 거대 탱커의 경우에도 석유를 사러 가는 왕로의 항해에는 장미스트 대신의 물을 쌓아 갑니다)예나 지금이나 짐을 싣지 않는 카라선의 항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 령이쓰시마가 수도를 사용할 정도로 지반이 안정될 때까지는, 에도 미나토에 모이는 나라의 회선에 대해서, 간다 가미미즈로부터의 물을 공급하고 있었습니다.그리고, 영이쓰시마의 마을들에의 공급이 간다 가미미즈에서 타마가와 상수로 전환되면, 증가하는 한편의 제국의 회선은, 안심하고 에도 미나토에 올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