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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니☆크리켓]
2017년 5월 22일 12:00
교바시 3가에 있는 도쿄 국립 근대미술관 필름 센터의 7층 전시실에서는, 현재, 인형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는 분야를 개척한 모치나가 타다히토씨(1919-1999)의 실적을 소개하는 기획전이 개최되고 있습니다.![](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mt-static/plugins/InsertIcon/images/happy01.gif)
![mtng01.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assets_c/2017/05/mtng01-thumb-350xauto-43392.jpg)
개최 기간은 5월 13일(토)부터 9월 10일(일)까지입니다.
개관 시간은, 11시부터 18시 30분까지(입실은 18시까지)로, 매주 월요일은 휴실일입니다.
![mtng07.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assets_c/2017/05/mtng07-thumb-autox354-43395.jpg)
일본에 국산 애니메이션 영화가 탄생한지 한 세기라고 합니다.![](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mt-static/plugins/InsertIcon/images/flair.gif)
모치나가 씨는 일본에서의 인형 애니메이션의 창시자인 동시에 중국에서도 애니메이션 제작을 지도하였고, 이후 중국 동영상계를 리드하는 많은 인재를 키웠습니다.![](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mt-static/plugins/InsertIcon/images/shine.gif)
![mtng06.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assets_c/2017/05/mtng06-thumb-350xauto-43398.jpg)
이 기획전에서는 실제로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에 사용된 인형이나, 모치나가씨의 창작 노트, 작업 기록 노트, 그림 콘테, 각본 등이 전시되어 있어 인형 애니메이션 영화 초창기의 어려움이나 선구자들의 영화 제작에 걸친 열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mt-static/plugins/InsertIcon/images/shine.gif)
![mtng02.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assets_c/2017/05/mtng02-thumb-350xauto-43402.jpg)
1초간에 24컷의 촬영이 필요해, 그것을 인형이나 풍경을 조금씩 움직이면서 실시해, 15~20분의 영화 제작에, 촬영만으로 40일을 필요로 하는 등 , 끈기와 집중력의 지속을 요구하는 작업을 제작자들이 묵묵히 계속되었다는 것을 알고 정말 머리가 내리는 생각이었습니다.![](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mt-static/plugins/InsertIcon/images/confident.gif)
![mtng04.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assets_c/2017/05/mtng04-thumb-350xauto-43405.jpg)
회장에서는, 모치나가씨 제작의 작품 영상도 흘러나오고 있어, 현대의 CG와는 다른, 상냥하고 따뜻한 애니메이션을 즐길 수 있습니다.![](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mt-static/plugins/InsertIcon/images/good.gif)
![mtng05.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assets_c/2017/05/mtng05-thumb-350xauto-43408.jpg)
이 전람회 기간중의 이벤트로서는, 모치나가씨에 관한 토크 이벤트나 특별 상영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자세한 것은 이 센터의 HP에서 확인해 주세요.
![mtng03.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assets_c/2017/05/mtng03-thumb-350xauto-43411.jpg)
덧붙여 이 블로그에서 소개해 주신 인형의 화상, 모치나가씨의 창작 노트, 치라시등의 화상에 대해서는, 동 센터로부터 빌렸습니다.
협력 감사합니다![](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mt-static/plugins/InsertIcon/images/confident.gif)
![mtng00.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assets_c/2017/05/mtng00-thumb-350xauto-43414.jpg)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의 초창기를 아는 좋은 기회입니다.![](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mt-static/plugins/InsertIcon/images/good.gif)
촬영 에 사용된 보존상태가 좋은 인형을 보면, 힘든 기억이 되살아나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mt-static/plugins/InsertIcon/images/flair.gif)
꼭 이 기회에 쿄바시 필름센터로 이사해 주십시오.![](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mt-static/plugins/InsertIcon/images/happy01.gif)
도쿄 국립 근대미술관 필름센터의 HP는 이쪽 ⇒
http://www.momat.go.jp/fc/
![](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mt-static/plugins/InsertIcon/images/movie.gif) ![](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mt-static/plugins/InsertIcon/images/shine.gif) ![](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mt-static/plugins/InsertIcon/images/movie.gif) ![](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mt-static/plugins/InsertIcon/images/shine.gif) ![](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mt-static/plugins/InsertIcon/images/movie.gif) ![](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mt-static/plugins/InsertIcon/images/shine.gif)
[yaz]
2017년 5월 20일 14:00
에도 시대에는 1798회의 화재가 있었고, 그 중 49회는 큰 불이었다고 합니다.
그 중 많은 피해가 발생한 화재로서는,
1657년 명력의 대화 (진수 화재)→ 이 화재를 계기로, 인형 마을 주변에 있던 요시하라는 아사쿠사 방면으로 이전을 강요당했습니다.
덴와(야조야기의 화재)의 큰 화재(1683년)
보력의 대화 (1760년)
메이와의 대화 (1772년)
문화대화(1806년), 문정의 큰 화재(1829년) 등이 있습니다.
화재의 원인은 조리나 조명용의 불의 불시말에 기인하는 실화 외에, 방화가 있었습니다.특히 에도 말기가 되면 막부의 권위 실추를 위해서 정정 불안이 되어, 방화가 늘어났습니다.
나가사키야도 많은 피해를 입고 화재 때마다 재건을 강요당했습니다.명력의 큰 불을 경험한 카피탄자하리아스 와헤나르는, 정월 15일에 장군 가쓰나를 알현해 18일에는 이노우에 치쿠고 모리세이시게를 방문하고 있는 중에, 혼고의 혼묘지 본당으로부터의 출화를 말했습니다.급히 나가사키야로 돌아온 워헤나르는, 격렬한 북풍에 휩싸인 불똥이 튀고 있던 모습을 네덜란드관의 옥상에서 보았다는 이야기입니다.에도 화재 도권에 명력의 대화의 우키요에가 남아 있으므로, 이하로 소개합니다.
![명력의 대화 (에도 화재 도권).jpg.jpg.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assets_c/2017/05/%E6%98%8E%E6%9A%A6%E3%81%AE%E5%A4%A7%E7%81%AB%EF%BC%88%E6%B1%9F%E6%88%B8%E7%81%AB%E4%BA%8B%E5%9B%B3%E5%B7%BB%EF%BC%89.jpg-thumb-784x461-43333.jpg)
불은 나가사키 집에도 다가왔기 때문에, 짐을 창고에 넣어 대피했습니다.일동이 피난하고 나서 한 시간 정도 후에 타 버렸다고 합니다.다음 19일, 불은 전날보다 맹위를 떨치고, 정오경에는 에도성에도 불이 들어갔습니다.
이 큰 불에 의해, 에도의 마을은 거의 괴멸해, 시가의 60% 이상이 불탄 들판이 되었습니다.이러한 큰 화재로 인해 나가사키 집도 피해를 입었습니다.1803년 당시의 병인의 대화 때의 「나가사키 네덜란드 상관일기」에 의하면, 나가사키야 재건의 비용으로 네덜란드측은 당시 귀중했던 설탕을 증여해, 재건 비용으로 한 것 같습니다.이와 같이 네덜란드측의 보조를 받고 막부의 조성을 받으면서 네덜란드관은 운영하고 있었습니다만, 과대한 차재의 부담에 견디지 못하고, 막부 말기에는 이 토지를 인근의 마츠자와 손하치(에도이치의 기름 도매상)에 양도해 중앙 거리각 5간 정도의 당 인삼좌만을 남겨, 이전했습니다이에 따라 200년여 계속된 네덜란드관도 없어져 에도 참부도 없어졌습니다.
11대 나가사키 겐에몬은 만연 2년(1861년)에 철포스후나마츠초 니쵸메의 강안지를 막부에서 배령해, 에도 나가사키 회소 용달에 임명되어 무역상으로서 재기를 도모했다.그러나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rosemary sea]
2017년 5월 20일 09:00
『기프트, 그리고 자신도 즐긴다』에 붙어, 어빌리티 발휘를 거점으로 취재합니다, rosemary sea입니다.
홋카이도 푸디스트 야에스점, 전회는 이전의 4월 상순의 들었습니다.
로즈마리 식 리포대, T야마 씨 2호(홋카이도 출신)의 제안이었습니다.
4월 26일, 야에스 지하가에 리뉴얼 오픈되었습니다.
가게의 넓이는 이전의 약 3분의 2가 되었습니다만, 도쿄 역에는 보다 가까워져 비에도 젖지 않고 역에 직결.이것은 야에스 지하가의 메리트군요.
수산물이나 농산품, 축산가공품, 유제품, 과자 등, 홋카이도 특유의 진짜 맛이 1,000품목 이상.
홋카이도의 대지, 대자연에서 자란 진정한 맛을 맛볼 수 있습니다.
품질이나 안전성에 유의해, 고집을 가지고 생산된 상품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는 그 상품의 극히 일부를 소개합니다.
이번에도 홋카이도 프론티어 주식회사 홋카이도 후디스트 야에스점 와타나베 점장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DSC02352a.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assets_c/2017/05/DSC02352a-thumb-220xauto-43362.jpg)
최초로 선물 코너.
중앙의, 조금 계단을 올라갔는데, 거기가 로즈마리 특기라고 하는 선물 상품이 놓여진 코너.
여기서 단토츠 제일 인기는 도키비 초코초콜릿과 화이트 초콜릿 2종 있습니다.
홋카이도의 정평 상품이니까 여러분은 아시죠.
와타나베 점장과 함께 찍게 했습니다.
![DSC02357a.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assets_c/2017/05/DSC02357a-thumb-300xauto-43364.jpg)
다음은 수산 가공품 코너.중앙 계단 아래입니다.
집에서 먹는 반찬・안주 같은 종류라고 하면 좋을까요
상품에 따라서는 「매진 중」의 지폐로 바뀌고 있는 것도.인기입니다.
여기서는 어카메시와 산마 조림이 2톱
이카메시는 왼쪽에서 하코다테(1꼬리), 카레(3오), 하코다테(2미), 모리마치(2미)
![DSC02359a.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assets_c/2017/05/DSC02359a-thumb-220xauto-43368.jpg)
산마는 왼쪽에서 흑초 조림, 생강, 된장국, 맛 볶음, 취지조, 유자 소금조국
버라이어티감 가득합니다.로즈마리의 촬영 전후에도 손님,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DSC02361a.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assets_c/2017/05/DSC02361a-thumb-autox267-43372.jpg)
냉동 징기스칸향해 오른쪽 위치.
여기에서는 「마츠오 징기스칸 특상 램(모모모)」을 추천합니다.
![DSC02364a.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assets_c/2017/05/DSC02364a-thumb-220xauto-43376.jpg)
라멘 코너.징기스칸 뒤쪽 위치
니시야마 라면 된장, 팔리고 있습니다.
![DSC02366a.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assets_c/2017/05/DSC02366a-thumb-220xauto-43380.jpg)
스위트 코너.향해 왼쪽, 소프트 크림 코너 앞
이쪽에서는 여러가지 상품이 골고루 팔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톱은 이 「푹신 눈덩이 치즈 케이크」맛있습니다.
![DSC02368a.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assets_c/2017/05/DSC02368a-thumb-300xauto-43382.jpg)
마지막으로 소프트 크림.3종 있습니다.가게 계산대의 왼쪽.
오호츠크해에 면한 홋카이도 북동부, 몬베츠가 되어, 오키베초, 노스 플레인 팜의 생유를 사용한 「홋카이도 우유 소프트」.맛은 농후, 제일 인기입니다.
소의 목초의 생육에 무화학 비료·무농약을 8년 이상 실시, 유기 JAS 인정 농장입니다.
소재를 고집한 안심하고 맛있는 소프트 크림, 350엔
그것과 「유바리 멜론 소프트」.
홋카이도 밀크 소프트와 유바리 멜론 소프트를 합친 「믹스」.
모두 350엔입니다.
이번 화상은 소개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가게의 중앙에는 마스코트의 곰의 「키타쿠마」.
제대로 이사해 오고 있습니다.이름은 인터넷으로 모집해서 손님에게 붙여 준 것입니다.
키타쿠마의 실려 있는 이전 전의 기사는 이쪽
⇒ /archive/2017/04/post-4203.html
홋카이도 푸디스트 야에스점
야에스 2-1 야에스 지하 가중 2블록
자세한 것은 야에스 지하가에 들어가, 점포 배치도에서 「야에스 지하가 1번 거리」, 「야에스 지하가 2번 거리」를 봐 주세요.
03-3275-0770
영업시간 10:00~20:00
연중무휴(원일만 가게휴무)
홋카이도 후디스트씨의 홈페이지는 이쪽⇒http://www.foodist.co.jp/
야에스 지하가씨의 홈페이지는 이쪽⇒http://www.yaechika.com/
덧붙여 이 기사 게재에 대해서 야에스 지하가 주식회사 오자와님에게 양해를 받았습니다.
[스미다의 불꽃놀이]
2017년 5월 19일 09:00
니혼바시(三越前) 역 바로 근처에 있는 「화폐 박물관」.얼마 전 처음 갔습니다.일본은행 본점 옆에 있는 빌딩에 있어 무료로 견학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일본은행 본점 건물이 있는 장소는 한때 에도시대에 「금자」라고 하는, 금의 화폐를 만드는 시설이 있던 장소입니다.
![s_hanabi47-2.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2017/05/19/s_hanabi47-2.jpg)
또, 지금의 주오구 「긴자」의 이름은 에도시대에 은화를 만드는 「긴자 관공서」가 있었던 것에 유래합니다.주오구에는 이러한 에도 시대의 화폐의 연고 장소가 있습니다.
![s_hanabi47-3.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2017/05/19/s_hanabi47-3.jpg)
(긴자 주오도리·긴자 2초메)
화폐박물관에 가보려고 한 이유라고 하는 것이, 4월의 야마나시현에 하나구경에 갔을 때에 하부온천의 「유노오 금산박물관」에 들러, 전국시대 무렵에 카이의 나라에서 유통된 「고슈금」이라는 화폐를 알고 흥미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버블 때에 하고 있던 대하 드라마 「다케다 신겐」을 본 이래, 뭔가 신겐공이나 야마나시현을 좋아하는 나.「고슈금」에 대해서는 조금 어려웠습니다만, 모처럼이므로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s_hanabi47-4.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2017/05/19/s_hanabi47-4.jpg)
(하부 온천에 있는 유노오쿠 긴잔 박물관)
어느 박물관에 가 봐도 알 수 있지만 에도 시대의 화폐제도의 역사의 시작에는 우선 그 전의 전국시대에 시작되었다고 하는 「고슈금」의 설명이 나옵니다.
지금의 야마나시현, 당시의 카이의 나라는 신겐공으로 친숙한 다케다가의 영국이었습니다만, 기술의 진보로 금이 많이 잡힐 수 있게 되어 있던 시대로, 당초는 바둑돌금이라고 하는, 영국내에서 통용되는 금의 입자 덩어리의 고슈금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거래 시에 금의 무게를 중요시하고 있던 전국 시대.그것은 『칭량화폐』로 분류되는 화폐였지만 무게가 제각각이었기 때문에 그때마다 무게를 가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게를 달지 않아도 되도록 무게가 통일된 화폐에 고슈금은 변화합니다.그것은 「1량금・1분금・1주금・사목금」이라고 하는 화폐.
1량금(15g)×1매
=1분금(3.75g)×4장
=1 주금(0.9375g)×16장
=이토메 금(0.234g)×64장
(참고 자료:유노오쿠 긴잔 박물관 전시 해설 시트 “고슈금”)
와,
금전의 단위를 「1량=4분=16주=64사목」의 4진법으로 함으로써 매수를 세는 것만으로 그 가치를 알 수 있고, 또 화폐끼리의 교환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가치가 무게로 결정되는 '경량화폐'의 측면이 있지만 화폐 표면에 액면이 표시된 참신한 금화로 '계수화폐'로 분류되는 것입니다.
또한 전국시대에는 금의 「무게」가 중요시되었다는 것이기 때문에, 실목금과 같은 작은 화폐를 만들 때에도 그 무게를 가늠하는 정밀한 저울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다케다 가문은 저울을 제조 판매하는 독점권을 「수제가」에게 주어 정밀한 저울을 만들었습니다.이렇게 보람의 나라에서는 저울의 기술도 발전해 갑니다.
그 후, 천하인·도쿠가와 이에야스공의 에도 막부의 시대가 되어, 전국의 통일적인 화폐 제도를 정비하게 됩니다.
금에 관해서는 고슈금의 4진법의 단위를 채용하여 「1량=4분=16주」의 화폐제도로 했습니다.은에 관해서는 「경량화폐」의 제도가 남았습니다만, 금에 대해서는 뛰어난 고슈 금의 「계수화폐」의 사고방식이 도입된 것입니다.
또한 저울에 관해서는 도쿠가와가는 수제가를 옹호하고 에도 막부의 “에도 저울자리”를 수제가에 맡겼습니다.동국 33개국의 공통 규격의 저울로서 이 보람이 뛰어난 저울 기술이 채용되었습니다.
그 저울자리가 있었다고 여겨지는 장소는 츄오구에 있고, 지금은 빌딩 사이에 조용히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s_hanabi47-5.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2017/05/19/s_hanabi47-5.jpg)
(니혼바시 3초메 7·닛폰바시 다카시마야에서 조금 교바시 방향)
이렇게 말했듯이 도쿠가와 정권에는 다케다가의 내정의 뛰어난 부분이 인계되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카이의 다케다가라고 하면, 풍림 화산의 기치나, 기마대·적대비의 갑옷의 부대 등, 정예 무사 군단의 이미지가 있습니다.그러나 이 고슈금의 제도나 홍수 대책으로 만든 신겐제 등으로부터도 알 수 있듯이 나라를 다스리는 훌륭한 정치를 한 영주였던 것 같습니다.
대하 드라마 「다케다 신겐」에서는, 드라마 종반에서, 신겐공이 이에야스공을 몰아붙여 깨뜨린 「미카타가하라의 싸움」의 씬이 그려졌습니다.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에야스 공이 싸움에 패한 뒤 자신의 실패를 반성하고 바꾸려고 한 것을 이 드라마가 소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간은 지나, 다케다가는 오다 노부나가공에 멸망되고, 혼노지의 변 뒤에, 카이의 나라는 이에야스공이 다스리는 곳이 되었습니다.싸움에 패한 적이 있는 기억나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고 생각합니다만, 이에야스공은 다케다가의 구신을 존경의 마음으로 초대해 넣고, 그 다케다가의 방식을 참고했다고 합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굳이 상대의 뛰어난 곳을 긍정적으로 흡수하려고 한 이에야스 공.그런 곳이, 이에야스공으로부터 배워야 할 곳, 본받아야 할 곳의 하나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yaz]
2017년 5월 18일 09:00
전회도 네덜란드관을 소개했습니다만, 카피탄(네덜란드 상관장)의 브롬홀츠(에도시대 후기의 상관장)와 딸들 사이의 편지가 남아 있으므로, 그것을 참고로 네덜란드 관내부와 장군 배알 등에 대해 상상해 봅시다(「나가사키야의 딸」타이틀의 미스터리 만든 소설이 나와 있습니다.흥미가 있는 분은 읽히면 어떻습니까?)
나가사키야 겐에몬은 약종 도매상으로서 중앙도리의 각지에는 당 인삼좌(조선 당근을 중심으로 한 약의 판매점)를 가지고 그 옆에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나가사키야의 저택 뒤에 네덜란드관이 있었지만 입구는 혼이시초 산쵸메 신도 측에 있었다고 생각됩니다.현재 혼이시쵸 신길은 「시간의 종길」이라고 이름 붙여져 있습니다.네덜란드관 옆에 에도 가장 오래된 '시간의 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시마치 종당 거리(현재의 전신주).jpg.jpg.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assets_c/2017/05/%E7%9F%B3%E7%94%BA%E9%90%98%E6%92%9E%E9%80%9A%E3%82%8A%EF%BC%88%E7%8F%BE%E5%9C%A8%E3%81%AE%E9%9B%BB%E4%BF%A1%E6%9F%B1%EF%BC%89.jpg-thumb-162x202-43317.jpg)
나가사키야의 부지는 넓고, 네덜란드인 이외의 사람들의 숙소와 헌상품 등을 격납해 두는 토조, 말의 마구간도 부지내에 대비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부지의 크기는 천평(3,300m2) 이상으로 생각됩니다.
1층 입구 바로 왼쪽 옆에는 문이 있고, 거기를 열고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2층에 올라가려면 경비원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고 생각됩니다.
![네덜란드관 2F 내부.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assets_c/2017/05/%E3%82%AA%E3%83%A9%E3%83%B3%E3%83%80%E9%A4%A82F%E5%86%85%E9%83%A8-thumb-569x260-43321.jpg)
가마 연기가 2층의 카피탄 집무실에 흘러들어 고생했다는 저술이 남아 있기 때문에 1층 왼쪽에 부엌이 배치되어 그 오른쪽에는 식당, 그리고 2층에서의 면담에 온 사람들이 대기하는 대합실이 그 오른쪽에 있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가마가 있는 부엌의 문은 나가사키야의 저택과 통하고 있어 그곳이 나가사키야 사람들과의 교류 창구였을 것입니다.나가사키야 측에서 조리한 식사 제공 등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초밥이나 튀김 등도 네덜란드인은 먹었을까요?
네덜란드관의 2층 오른쪽의 변소 욕실에서 h 「오마루」나 요병을 이용해, 막부 말기 근처에는 변좌의자나 깃발식 변기와 같은 것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나가사키야의 변소.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assets_c/2017/05/%E9%95%B7%E5%B4%8E%E5%B1%8B%E3%81%AE%E4%BE%BF%E6%89%80-thumb-756x556-43331.jpg)
네덜란드 숙소(館)는 히로나가 연간(1624~1644)에 시작되어 1850년경에 끝났지만, 참부의 합계 횟수는 166회에 달했습니다.이에미쓰 시대에는 매년 참부하고 있었지만, 후기가 되면 4년에 한 번으로 바뀌었습니다.
나가사키야는 카피탄 일행이 도착하기 2~3일 전부터 매우 바쁜 나날을 보냅니다.2층의 수선을 실시해, 재부의 나가사키 봉행소 관리의 검분을 받습니다.도착 전날 밤부터 마을 봉행소의 보청 약 2명, 동심 2명이 나가사키야에 채워 경비에 임합니다.이 사람들이 네덜란드관의 1F 경비원실에 채웠을까요?
「여관(네덜란드관을 가리키는)의 문에는 이중의 번소 있어, 끊임없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또 통행인의 멈추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남아 있기 때문에, 경비는 매우 엄중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호쿠사이의 우키요에로서 카피탄 일행과 에도쵸민이 창을 통해 교류하는 모습이 그려져 현재도 신니혼바시역 입구에 간판으로서 내걸리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호쿠사이의 각색이라고 생각됩니다.쇄국의 시대이기 때문에, 네덜란드관 1층에 창문이 있었다고는 매우 생각할 수 없습니다.
카피탄 일행이 체재하고 있을 때에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VOC)의 사막을 나가사키야의 표겐세키(혼이시초 산쵸메 도로)에 내걸고 있었습니다.아래의 어느 쪽인가는 불명입니다.에도 막부는 쇄국을 정책으로 내걸고 있었기 때문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라는 사기업과 거래를 하고 있었다는 겉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카피탄의 의상은 밑그림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에도의 사람들에게는 신기하게 흥미를 끌었을 것입니다.
![네덜란드인 양복.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assets_c/2017/05/%E3%82%AA%E3%83%A9%E3%83%B3%E3%83%80%E4%BA%BA%E3%81%AE%E6%B4%8B%E6%9C%8D-thumb-119x185-43327.jpg)
네덜란드 사절단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카피탄 서기·의사 등의 수원을 포함해 4명의 네덜란드인
기타, 나가사키 봉행소의 검사, 통변, 서기, 요리사, 헌상물의 운반인족 등
총 60명 정도라고 합니다.이만큼의 인원수가 나가사키에서 에도까지 이동하기 때문에, 장관입니다.
![카피탄 일행 참부의 모습.jpg.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assets_c/2017/05/%E3%82%AB%E3%83%94%E3%82%BF%E3%83%B3%E4%B8%80%E8%A1%8C%E5%8F%82%E5%BA%9C%E3%81%AE%E6%A7%98%E5%AD%90.jpg-thumb-504x328-43329.jpg)
네덜란드관 저택에 모든 사람을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부지 내의 수행원 숙소에 일부를 수용하고 나머지는 인근의 여구에 수용한 것 같습니다.카피탄 체류시에는 많은 금전이 니혼바시 근처에서 떨어져 매우 붐볐다고 합니다.
1822년(1823) 당시의 장군(11대 쇼군 도쿠가와 가제)에 대한 배현의 단서는 다음과 같다.
l 장군을 알현일: 4월 6일
우의 각(오전 6시) 나가사키야데타치
가바구에서 내려 성내에 들어간다
백인번소에서 차를 마신다
l 대기
l 고텐에 도착
l에도 재부의 나가사키 봉행과 카피탄이 배알현
배알 종료 후, 막각의 노중, 젊은요기, 측용인, 테라사 봉행, 북·미나미마치 봉행의 저택을 돌아 나가사키야로 돌아옵니다만,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난학을 좋아하는 다이묘, 막부의 의관, 천문방에서 기모토, 여러 다이묘, 민간의 난학자등이 아란타관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이들과 면담해, 겨우 장~~~~~하루가 종료됩니다.이 후 안심하고 리큐르라도 마셨습니까?
참고 문헌:
네덜란드 숙소 딸 하무로 린하야카와 문고
조나이 세이이치: 에도 최초 때의 종 이야기(유통 경제 대출판회)
조나이 세이이치: 에도의 네덜란드인 정숙 「나가사키야 이야기」(유통경제대출판회)
가타기리 카즈오: 에도의 네덜란드인(중공신서)
가타기리 카즈오:그런데도 에도는 쇄국이었나(요시카와 히로후미칸)
도쿄도 주오구 교육위원회: 주오구 연혁도집(니혼바시편)
[아스나로]
2017년 5월 17일 16:00
주오구도 나무들이 많아 사계절마다 다양한 모습이 있네요.
비가 내리는 산책로, 카에데의 와카바가 눈에 선명하게 비쳐집니다. 이 시기의 카에데의 와카바는, 「청카에데」라고 불리며, 초여름의 계어에도 드리겠습니다.
![DSC_5222.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2017/05/14/DSC_5222.jpg)
여름을 향해 매일 파란색을 늘려, 잎을 충실시킵니다.
아오바가 겹쳐 맺어진 것처럼 되는 모습을 ‘결엽’이라고 한다.
![DSC_5231.jpg](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2017/05/14/DSC_5231.jpg)
녹색은 눈의 피곤이 치유된다고 합니다. 거리 안의 녹색 채를 찾아 보지 않겠습니까?![](https://ko.tokuhain.chuo-kanko.or.jp/archive/mt-static/plugins/InsertIcon/images/happy01.gif)
◆후쿠토쿠 신사(메이와리) 도쿄도 주오구 니혼바시무로초 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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