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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오구 여기에 역사 있어(43) 우에노·시미즈 관음당 “가을시키사쿠라”-모토로쿠기, 오아미초의 소녀가 읊은 구

[마키부치 아키라] 2012년 4월 13일 08:30

벚꽃의 명소, 하나미객으로 붐비는 우에노·시미즈 관음당(키요미즈칸논도)의 경내에 한 개의 타레 벚꽃이 피어 자랑한다.석등롱 옆에 비석과 훌륭한 구비가 세워져 있다(사진상 왼쪽)구를 읊은 것은, 모토로쿠의 무렵, 니혼바시 코아미쵸의 「가을」이라고 하는 13세의 소녀였다.그 배우호에서 이 벚꽃을 「가을색벚꽃」이라고 부르고 있다.

 

구비에 새겨져 있는 것은 다음의 구절로, 다이토구 설명판에 의해 소개하고 싶다.

 

  우물 바타노 벚꽃 아부나시 술의 취

 

0913_43_120410ueno_shushiki.jpg니혼바시 고아미쵸의 과자 가게의 딸인 가을이 모토로쿠의 무렵 꽃놀이 손님으로 붐비는 우물단의 정경을 읊었다.벚꽃 가지에 맺어진 이 구를, 린오지 궁이 칭찬한 것으로, 에도중의 대평판이 되었다.

 

가을은 9세다카이 기각의 문하가 되어, 배우호는 기쿠후테이 가을색이라고 호했다.당시 13세였다고 전해진다.이후 이 벚꽃은 「가을색 벚꽃」이라고 불린다.

 

기각 사후, 그 점 표시[(편주)텐인=배우사의 점자가 구의 평점을 위한 누르는, 각자 독특한 인형『광사엔』을 맡을 정도의 재원이었다.1725(1725)몰이라고 전해진다.

 

비는 1940(1940) 10월 청장 주인이 세웠다.현재의 벚꽃은 1978 심어 접한 것으로, 대략 9대째에 해당한다고 상상된다.

 

이 구비의 옆에는 우물단(사진상 오른쪽)이 만들어져, 가을색 벚꽃에는 「야에베니시다레(야에 홍수)」의 팻말이 붙어 있다.

 

가쿠는 에도의 사람.마츠오 바쇼몬시타, 에도의 쇼풍파로 「쇼몬 토테테테츠」의 한사람「기각 주거터」비(사진 아래 오른쪽)가 니혼바시카야바초의 영대길에 접한 곳에 세워져 있다.가을이 살았던 고아미마치는 니혼바시강의 북쪽으로, 기각택과는 지근거리에 있었을 것이다.

 

미나토구 미타에 와자점 「아키리안 오사카야」가 있어, 동점의 HP 에는 유래 등이 게재되고 있다.●마키부치 아키라

 

 

 

◆츄오구 여기에 역사 있음 (42) 지진 재해 부흥 사업을 되돌아 보는 -3 <공원편>―지금 남는, 귀중한 도시 공간

[마키부치 아키라] 2012년 4월 8일 08:30

간토 대지진으로부터 6 6개월 후인 1930(1930) 부흥제를 거행한 도쿄는 제도 부흥사업으로 부흥공원을 각지에 조성했다.에도기의 불구지에 상당하는 공원지는 방화 대책과 피난 장소 확보로부터 설치된 것이다.구내에 지금도 남아 있는 지진 재해 부흥 공원지는 과밀한 도시에 있어 오아시스적 공간이 되고 있는 것과 동시에, 방재 광장이기도 하다.

 

0913_42_120331sinsai_kouen.jpg지진 재해 부흥 대강에 의해 다이코엔과 소공원이 계획되었다.우선, 다이코엔은 스미다 공원, 하마마치 공원, 긴시 공원의 3공원이었다.

 

당시의 하마마치 공원은 다음 같은 상황이었다고 한다.알려진 대로 구구마모토 번 호소카와 저택의 터이다.

 

정면에는 분수와 분수 연못.남쪽에는 아동 유희장이나 수영장이 있고, 동쪽은 오시바 천의 끝에 조시아 콘도르 설계의 기념탑이 세워진다.오카와(스미다가와) 끝은 식수되어 도쿄만을 바라볼 수 있다.총면적은 약 8600평.

 

소공원은 부흥 초등학교와 세트로 개발되었다.재건된 부흥 초등학교는 시내에서는 117교에 이른다고 한다.그 중추오구(당시는 교바시구와 니혼바시구)에서는 25개교가 해당되었다.현재도 토키와 초등학교, 토시 스퀘어(구십사 초등학교) 등이 존속해 도쿄도 역사적 건조물로 지정되어 있다.콘크리트 구조로 내화화된 초등학교에 인접해 소공원이 만들어졌다.

 

시내 전체로는 52곳에 소공원이 조성되었다.당시 구내(쿄바시 구·니혼바시구)에서는 이하의 11개 공원이었다.() 안은 인접 초등학교

 

1.도키와 공원(토키와 초등학교), 2. 쿠마츠 공원(쿠마츠 초등학교), 3. 토쿄코엔(주사 초등학교), 4. 하코자키 공원(하코자키 초등학교), 5. 가키가라마치 공원(아리마 초등학교), 6. 철포스 공원(쿄바시 초등학교), 8.츠키지 공원(츠키지 초등학교)=현존하지 않고, 9.에치젠보리 공원(메이쇼 초등학교), 10. 츠키시마 제1공원(츠키시마 초등학교), 11.츠키시마 제2공원(츠키시마 제2 초등학교)

 

쿄바시 공원에는 당시 콘크리트제 2연식의 희귀한 미끄럼틀이 남아 있었지만, 노후화 때문에 작년(2011) 철거되어 왕시 사진설명판이 세워져 있다(사진 아래 오른쪽)현재에도 부흥공원의 대부분은 아동공원 등 지역 커뮤니티의 장이나 방재 거점으로서 기여하고 있는 가치가 크다.개원 당시의 모습을 조금 남긴 것은 분쿄구의 모토마치 공원이라고 한다.●마키부치 아키라

 

 

 

◆츄오구 여기에 역사 있음(41) 지진 재해 부흥 사업을 되돌아 보는 -2 <교량편>―설계 주도자·오타 마루조

[마키부치 아키라] 2012년 4월 1일 08:30

간토 대지진 발생 6 6개월에 걸쳐 부흥한 도쿄는 제도 부흥 사업으로 새로운 도로와 함께 부흥 교량이 세워졌다.오늘날에는 영대교, 기요스바시가 국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이번에는 부흥 교량 설계에 심혈을 기울인 오타 엔조(오타·엔조)에 주목하고 싶다.

 

0913_41_120328ootaenzo.jpg오타 엔조는 1881년(1881), 시즈오카현 다가타군 이토초(현 이토시 유가와)에서 태어났다.4세 아래의 남동생은 시인·극작가의 키노시타 모쿠타로(키노타·모쿠타로=본명 오오타 마사오)도쿄 테이 대학을 졸업 후 체신성 철도 작업국(훗날 철도성) 입국단나 터널이나 시미즈 터널을 담당해 천재 기술자로 평가된다.간토 대지진 부흥 사업에서는 제도 부흥원의 토목국장으로서 수완을 발휘했다.

 

그 업적을 기리는 기념비가 지요다구·간다바시키타즈메 서쪽 공원에 세워져 있다(사진상 왼쪽)비문에는 「매우 난사업이었던 구획 정리, 토목공사에 헌신적 노력을 했다」라고 있다.그리고 「1926년(1926) 봄, 심신피로가 끝날 때, 사업의 희생으로 아쉽게도 그 목숨을 끊었다」라고 이른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1930(1930)의 부흥식을 보지 않은 채 45에 세상을 떠났다.이 비는 당초 아이오이바시 반의 나카지마 공원에 세워졌지만 전쟁으로 손상되어 수복 후 현재지로 이전되었다.조각상의 배경은 기요스바시가 새겨져 있다.

 

나가요바시 유래판(사진상 오른쪽)이나, 영대교(사진 아래 왼쪽)와 기요스바시(사진하 오른쪽)의 중요 문화재 지정 기념비에는, 설계자로서 모두 오타엔3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영대교는 제도의 문·제일 교량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부근은 지질이 나빠 일본 최초의 압착공기에 의한 잠함공법으로 만들어진 남성적인 아치교기요스바시도 하부는 잠함공법이며, 여성적인 자이카리식 현수교가 되고 있다.이 교량은 경관 등 항상 대비된다.공법이나 구조에 당시의 기술을 결집한 교량일 뿐만 아니라 도시 미관을 창출한 디자인에는 오늘날에도 매료된다.

 

지진 전에 도쿄시가 관리한 교량은 600교 정도였으며, 부흥 사업에서 다룬 것은 약 460교에 달했다고 한다.그 중에서도 스미다가와에 가설된 교량은 부흥의 상징이었다.「스미다가와 부흥 6대교」라고 칭해진 것은 나가요바시, 기요스바시, 고마가타바시, 구라마에바시, 언문이교, 아이오이바시.이에 아즈마바시, 마구바시, 료고쿠바시와 지진을 견딘 신대교의 4교를 더한 것을 ‘10대교’라고 한다.스미다가와 각 다리는 디자인이 다르며 "다리의 전람회"라고도 불린다.

 

남동생 키노시타 모쿠타로는 「빵의 모임」을 시작해, 키타하라 시라아키, 요시이 이사무 등 당시의 문학·미술계를 장식한 인물들과 교류해, 프랑스의 센강에 마음을 모아, 스미다가와 강반의 요리점 등에서 이야기를 나눴다.형제는 스미다가와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마키부치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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