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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오구 여기에 역사 있음(41) 지진 재해 부흥 사업을 되돌아 보는 -2 <교량편>―설계 주도자·오타 마루조

[마키부치 아키라] 2012년 4월 1일 08:30

간토 대지진 발생 6 6개월에 걸쳐 부흥한 도쿄는 제도 부흥 사업으로 새로운 도로와 함께 부흥 교량이 세워졌다.오늘날에는 영대교, 기요스바시가 국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이번에는 부흥 교량 설계에 심혈을 기울인 오타 엔조(오타·엔조)에 주목하고 싶다.

 

0913_41_120328ootaenzo.jpg오타 엔조는 1881년(1881), 시즈오카현 다가타군 이토초(현 이토시 유가와)에서 태어났다.4세 아래의 남동생은 시인·극작가의 키노시타 모쿠타로(키노타·모쿠타로=본명 오오타 마사오)도쿄 테이 대학을 졸업 후 체신성 철도 작업국(훗날 철도성) 입국단나 터널이나 시미즈 터널을 담당해 천재 기술자로 평가된다.간토 대지진 부흥 사업에서는 제도 부흥원의 토목국장으로서 수완을 발휘했다.

 

그 업적을 기리는 기념비가 지요다구·간다바시키타즈메 서쪽 공원에 세워져 있다(사진상 왼쪽)비문에는 「매우 난사업이었던 구획 정리, 토목공사에 헌신적 노력을 했다」라고 있다.그리고 「1926년(1926) 봄, 심신피로가 끝날 때, 사업의 희생으로 아쉽게도 그 목숨을 끊었다」라고 이른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1930(1930)의 부흥식을 보지 않은 채 45에 세상을 떠났다.이 비는 당초 아이오이바시 반의 나카지마 공원에 세워졌지만 전쟁으로 손상되어 수복 후 현재지로 이전되었다.조각상의 배경은 기요스바시가 새겨져 있다.

 

나가요바시 유래판(사진상 오른쪽)이나, 영대교(사진 아래 왼쪽)와 기요스바시(사진하 오른쪽)의 중요 문화재 지정 기념비에는, 설계자로서 모두 오타엔3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영대교는 제도의 문·제일 교량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부근은 지질이 나빠 일본 최초의 압착공기에 의한 잠함공법으로 만들어진 남성적인 아치교기요스바시도 하부는 잠함공법이며, 여성적인 자이카리식 현수교가 되고 있다.이 교량은 경관 등 항상 대비된다.공법이나 구조에 당시의 기술을 결집한 교량일 뿐만 아니라 도시 미관을 창출한 디자인에는 오늘날에도 매료된다.

 

지진 전에 도쿄시가 관리한 교량은 600교 정도였으며, 부흥 사업에서 다룬 것은 약 460교에 달했다고 한다.그 중에서도 스미다가와에 가설된 교량은 부흥의 상징이었다.「스미다가와 부흥 6대교」라고 칭해진 것은 나가요바시, 기요스바시, 고마가타바시, 구라마에바시, 언문이교, 아이오이바시.이에 아즈마바시, 마구바시, 료고쿠바시와 지진을 견딘 신대교의 4교를 더한 것을 ‘10대교’라고 한다.스미다가와 각 다리는 디자인이 다르며 "다리의 전람회"라고도 불린다.

 

남동생 키노시타 모쿠타로는 「빵의 모임」을 시작해, 키타하라 시라아키, 요시이 이사무 등 당시의 문학·미술계를 장식한 인물들과 교류해, 프랑스의 센강에 마음을 모아, 스미다가와 강반의 요리점 등에서 이야기를 나눴다.형제는 스미다가와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마키부치 아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