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다치·코린에 이어 ‘린파’ 제3의 거장 사카이 도이치(1761-1829)「에도 린파」의 조라고도 불리는 그의 무덤이 츠키지의 혼간지에 있는 것을 아시는 분도 많을 것입니다.1797년(1797), 에도에 하향한 교토 니시혼간지의 문주·분여상인 아래, 그는 츠키지 혼간지에서 출가 얻은 것입니다.하지만 포일과 주오구의 인연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포일 상인(사카이 타다인(다다오))은 1761년(1761), 히메지 번주 사카이 마사라쿠 두가 적자의 차남으로서 간다 오가와초의 사카이가 별저에서 태어나, 에도성 오테몬 앞의 우에 저택에서 성장합니다만, 1790년(1790) 30세 때, 하코자키의 나카야시키로 옮겨, 수년을 보낸다나카야시키는 이나리 호리(토우칸보리)의 동쪽, 현재의 니혼바시 인가타마치 잇쵸메와 니혼바시 가라마치 잇쵸메에 걸쳐, 니혼바시 하코자키쵸 앞, 수도 고속도로 근처까지, 굉장히 넓은 것이었습니다.(여기는 메이지 유신 후에는 사이고 다카모리의 저택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회화뿐만 아니라 배우와 광가 등 문예의 세계에서도 드문 재능을 발휘했습니다만, 나카야시키 시대의 구집 「카지노 소리」에서는 「하코자키(하코자키) 후나모리」가 되는 호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포일의 거주지라고 하면 만년의 충실한 작품을 낳은 네기시의 「우화암」이 유명합니다만, 지금으로 말하면 「중앙 구민」이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이 포일이 태어난 1761년부터 올해로 꼭 250년.올해 초에는 이데미술관, 하타야마 기념관에서 관련 미술전이 있었습니다만, 여름 이후 「탄생 250년 기념 사카이 도이치와 에도림파의 전모」라고 하는, 대표작이 늘어선 대규모 회고전이 히메지·지바·교토와 순회해 열립니다.유감스럽게도 도내 개최는 없지만 수도권에서는 지바시 미술관에서 10월 10일부터 11월 13일까지 열립니다.사요타로도 츠키지의 무덤에 참배하고 나서 지바까지 다리를 놓아 포일의 정수와 마사를 즐겨 오려고 합니다.
[사진상]사카이 집안 저택터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신오하시도리
[사진 중] 쓰키지 혼간지의 포일의 묘
[사진 아래]우표가 된(1970) 대표작 「하추초도 병풍」(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