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시리 백과」에서는, 긴자의 버드나무 기념비에 대해서는, 하기 「긴자나기의 비」(긴자 8-9 앞)에 대해서 설명한다(47쪽)뿐이다.
사이조 하십 작사, 나카야마 신헤이 작곡 “긴자의 야나기”의 노래비.1887년경 가로수로 긴자의 거리에 심어진 야나기는 거리의 발전과 함께 긴자의 명물이 되었다.그 버드나무를 노래한 이 노래는 전국을 풍미했다.이를 기념하여 1954년 4월 1일, 긴자 통연합회가 이 비를 건립했다.
그러나 긴자의 버드나무에 관한 기념비는 따로 2개소 있고, 그 중 하나인 「야나기나미수비」는, 수기야바시 공원에 있다.
긴자의 상징 야나기나미키
긴자의 야나기는 1877년경에 심어져 긴자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세 번의 변천을 거쳐 1968년 긴자 거리의 개수와 함께 사라졌다.
이번에 니시 긴자 거리가 도쿄도의 상징 로드로서 보도 확장과 함께 미카게이시 포장을 실시해 면목 일신된 것을 계기로 가로수를 야나기 대신 긴자의 상징 부활을 완수했다.
니시 긴자 통회는 이 버드나무가 길게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계속되기를 바라며 여기 수기야바시 공원에 비를 건립한다.
1999년 11월 니시 긴자 도리카이 회장 야나기사와 마사이치」
그리고 또 하나의 「긴자 류 유래의 사」가 긴자 1가에 있다.
긴자의 야나기 유래
긴자의 버드는 1887년쯤 긴자 거리에 심어진 이래 1920년 철거 1931년 부활의 변전을 거치면서 수많은 시가에 휘말려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온 긴자의 상징이 된 버드나무도 수세의 쇠약도 있어 1968년 보도의 대개수에 해당 이식의 멈추지 않게 되었다.
지금 다시 이 거리 일대에 버드나무를 맞이하여 「긴자 야나기 거리」라고 이름 붙일 때 길고 긴자의 버드나무의 유래를 전하기 위해 비를 건립한다. 긴자 통연합회”
이 「1931 부활」에 대해서는 하풍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쇼와 7(1932)년 3월 25일 “····귀는 길야바시 아사히 신문사 입구에 “긴자의 야나기 부활 기념제”라든가 쓴 게시를 본다.걸리는 일에 부활이라고 부종교상의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수상해 미소 짓지어.말이 어지러운 것은 인심의 흐트러짐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