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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도쿄의 니혼바시

[CAM] 2015년 7월 11일 09:00

  이케다 야자부로 씨는 “오사카에도 니혼바시가 있는데...오사카의 경우, 이것을 닛폰바시라고 말하는 것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즉, 에도에서 니혼바시를 닛폰바시라고 말하지 않고, 일본바시라고 말한 것은, 원래 (도쿄·니혼바시의 이름의 기원이) 「일본」이 아니라, 「2편」이었다는 것의 방증이 된다고 생각한다.(56)라고 말하고 있다.

 

 1618년(1618)에 교체된 도쿄·니혼바시(日本橋)는 길이 약 67.8m, 폭 7.8m의 목조교였다(「중앙구 모노시리 백과」118쪽)에 비해 오사카의 니혼바시는 거의 같은 시기인 1619년(1619)에 에도 막부에 의해 도톤보리 강에 놓였다.길이 약 40m, 폭 약 7m의 목조 다리로, 에도의 니혼바시와 같이 공의교였다(도톤보리 강에서는 유일)(Wikipedia) 또한 이케다 씨도 말했듯이 『게이쵸 견문집』에서는 1618년의 교체된 다리의 크기를 기록하면서 그 이전의 다리의 크기에 대한 기재가 없다(『니혼바시 사기』92쪽)

 

 1787년(1787)의 조사는 당시 오사카에는 12개의 공의교와 143개의 마을교와 합쳐 155개였다고 한다.공의교라고 하는 것은 막부가 관리해, 교체나 수리 등을 막부의 비용으로 실시하는 다리이며, 외견적인 구별로서 공의교의 경우는 청동제의 의보주가 붙여져 있었다. 에도의 경우, 공의교는 에도 성 안팎에 걸쳐 4,50개 외에 시중에 약 120개, 아울러 160개에서 170개나 있었다.(오카모토 료이치 「오사카의 역사」;60)

 

 이와 같이, 1619년(도쿄의 니혼바시 교체의 1년 후)이라는 시점에서 막부에 의해 세워진 오사카에서는 몇 안 되는 공의교가 당시부터 「닛폰바시」라고 칭해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창가(1603년설이 유력) 전후부터 당분간 도쿄에서는 「니혼바시」라고 칭해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고, 상기의 이케다 야자부로설은 상당히 설득적인 것이 되지 않을까.

 

    덧붙여 이케다 씨는 스스로 작사한 「비의 사계」라는 가사 중에서도, 「니혼바시」라는 용어를 이용해, 「오사카는 닛폰바시로, 에도가 닛폰바시인 것은, 니혼바시는 후의 합리해로, 옛날에는 니혼바시였던 것이 아닐까라는 작자의 학설(?)에 따라 일부러 그렇게 해 보았다”고 말했다.(184)

 

   상기와 같이 도쿄·니혼바시가 오사카의 것보다 크기에서 상당히 이기지만, 도쿄·니혼바시가 창가된 1603년 시점에서는 물론, 1618년 시점이어도 도쿄·니혼바시 부근은 아직 신개지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지만, 오사카의 도톤보리, 사카이스지는 이미 완전히 도시화되어 있었을 것이다.

 

 지역명으로서는 현재의 오사카 시·니혼바시 지역은 “에도 시대에는 기슈 가도의 일부이기도 한 사카이스지에 접해 여장이나 기임숙이 늘어서 나가마치라고 불렀다. 1792년(1792)에 나가마치 중 현재의 주오구 측이 니혼바시로 개칭되어 1872년(1872)에는 현재의 나니와구 측도 포함해 일본 교지로 개칭되었다.”(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