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에사·에도카노 사가의 저택은 모두 오늘의 주오구 내에 놓여져 있었다.카노 에이토쿠의 손자 탐유는 에도 개후와 함께 에도로 옮겨, 대장장이교에 저택을 배령한다.5세 아래의 남동생, 나오노부(나오노부)는 다케가와초(긴자, 노치키초 이전)에, 11세 아래의 남동생, 안신(야스노부)는 교바시 나카바시에 각각 배령 저택을 얻고, 에도카노파의 기초를 쌓았다.그 3형제의 전람회 「탐유 3형제전~카노 탐유・상신・안신~」(3월 30일까지)가, 이타바시 구립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사진상)
무로마치 시대부터 융성을 다한 카노파는 탐유 때에 에도에 거점을 옮겨 막부 어용 그림사로 활약했다.1602년(1602) 산성국(현 교토부 남부)에서 태어났다.이에야스를 알현하고 교토에서 부름을 받아 어용 그림사가 되어, 1621년(1621)에 대장간교 고몬 밖에 저택 배령한다.1674년(1674)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쇼신은 1607년(1607) 산성국에서 태어났다.1630년(1630), 에도에서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알현, 어용을 신청해 다케가와초에 저택배령1650년(1650) 4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안신은 1613년(1613) 산성국 출생.1623년(1623) 가노 종가를 잇는히로나가 연간에 나카바시에 저택을 배령한다.1685년(1685)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주오구의 에도카노 저택터를 방문하자「카노 화학원 자취」는 긴자 고쵸메, 구 키하키쵸에서 쇼와도리에 면해 설명판이 설치되어 있다(사진 아래)여기는 키비키초 가노 저택 자취로, 긴자 다케가와초에서 이전해 온 것에도카노파로서 막부 말기까지 존속해, 메이지 화단에 가노 요시와 하시모토 마사쿠니 등을 배출했다.
나카하시 카노 저택 자취는 교바시 잇쵸메, 구 오가마치로, 가가와 히로시게 주거터의 설명판 안에, 약간 가노 저택이 있었던 것이 접해지고 있다.탐유의 대장간교 저택 자취는 야에스 니쵸메, 대장장이교 교차점 부근이지만, 사카모토 료마가 지나간 지바 사다요시 도장이 일시 놓인 곳이 대장지교 가노 저택 부근이었다고 그 설명판에 있다.에도카노 사가로서 하마마치 가노 저택이 있었다고 여겨지지만, 자세한 것은 불명이다.@마키부치 아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