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후기, 일본 전국을 측량해 본격적인 지도를 완성시킨 이노 타다타카「대일본 연해여지 전도」는 통칭 「이노도」라고 불리며, 하치초보리 카메시마초에서 제작·완성되었다.그 사적지의 니혼바시 가야바초 니쵸메에는 「지도 어용소터」설명판(사진 아래 왼쪽)이 세워져 있다.또, 카메시마바시 니시즈메 남쪽에는 역사 안내판이 있다(사진 아래 오른쪽)
이노 타다타카는 1745년(1745) 가미소국 야마베군(현
에조지의 측량으로 시작되어 이후 17년간 10차에 걸친 일본 전국의 연안을 실지 측량하여 그 거리는 4만 km를 넘었다고 한다.측량 출발 전에는 제자들과 토미오카 하치만구에 참배하고, 도중의 무사를 빌었다고 한다.그 연고인 이 신사의 경내에는 여행 모습의 동상(사진상 오른쪽)이 세워져 있다.
1814년(1814)에는 후카가와 구로에초에서 하치초보리 카메시마초로 이사했다.이곳은 지도 어용소로서의 역할이기도 했다.이 땅은 여력 후지타 롯사에몬의 저택(약 200평)의 일부 차지로, 카메시마초라고는 하지만, 무가지 때문에 정식 마을명은 없다.따라서 이 근처의 마을명을 원용한 것구와하라 다카조(센다이 번의, 에도즈메, 400석)의 저택 자취였다.
충경은 1818년(1818년), 73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이곳이 종말의 땅이 되었다.유언으로 아사쿠사 겐공지에 매장했지만, 상의 일은 묵고 있었다.사후에도 문제들에 의해 지도 제작은 계속되어 1821년(1821), 「대일본 연해여지전도」가 완성되어 막부에 상표했다.이때가 되어 상을 공표했다.
막부 요인에의 지도 피로에 있어서, 아들 충회는, 「···오히로마에, 쿄요리 니시노카타 다이도 14권 개키츠구.중 그림, 소도 마타구.미로중, 젊은 기어란유, 또 제권 권키나메···”(“충일기” 1821년 7월 10일)(『이노 충경 연구』 제34호 소수입)라고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