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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메카게유(마고메카게유)

[하마타로] 2011년 11월 10일 08:30

하마마쓰시출신으로 에도의 마을 만들기의 공로자의 한 사람에게 마고메 감해유의 이름이 떠오른다.

마고메 감해유에 관련된 자료는 적고, 일부는 「에도 도쿄 박물관」에 보관되어 그 전모는 아직 조사, 연구중의 부분도 많다고 한다.이에야스의 에도 입부 이래, 도나카 덴마 역으로서 또, 마을 명주로서 이에야스를 그늘로 지지해, 황량한 에도의 땅을 정비, 발전에 부심한 인물의 한 명인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하마마쓰시거의 중앙을 남북으로 흐르는 강이 마고메 강이다.사실에 의하면, 이 강에 가설된 마고메 다리에서 오사카의 진에서 돌아오는 이에야스를 500명의 인족을 끌고, 마중에 참가한 것에 유래해, 이후, 마고메의 성을 자칭하도록 건네받았다.

동시에, 다카라다무라(현재의 오후쿠바시에서 도쿄역 근처)의 광대한 공터를 주었지만, 그 후, 에도성 확장을 위해, 오덴마초에 이전을 명령받았다.지금이야,주오구의 번화가라고 하면, 긴자, 니혼바시계 구마이지만, 당시는 마고메 감해유 인솔하는, 그 이름대로, 덴마초가 풍광이 되어, 여장야뿐만 아니라, 에도의 교통, 물류의 중심이 되어, 마타 미카와, 이세에서 목면 도매상이 진출해, 상업의 마을로서도 활황을 띠고, 그 활기는, 오늘의 대전마초와는 비교가 안 된다고 한다.

마고메 감해유의 이름은, 이에야스의 시대부터 메이지 초두까지, 거의 대대로 세습으로서 계승되어, 어느 시대의 마고메 감해유인지 불명한 점도 있지만, 에도의 역사, 문화의 기초를 만든 중심 인물로서 각광을 받는 날은 반드시 온다고 생각한다.

(오른쪽 아래의 사진은 「오다케 대일여래 우물터」의 비석이것에는 대나무는 마고메가의 하녀라고 있다.

 마고메가의 저택의 넓이를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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