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겐로쿠 충신장에 화제가 모인다.에도성 내에서의 칼날상 사건(아카호 사건)으로, 아사노우치 쇼토나가구에 베어진 고가의 요시라 우에노스케 요시오를 치료한 것은 외과의사인 구리사키 미치유라고 한다.이듬해, 요시라 요시오는 아카호랑사들에게 빼앗겼다.지금 이 두 사람은 같은 절에 묻혀 있다.미치유의 저택은 핫초보리에 있었을까.
구리사키 미치유(쿠리사키·도우=1660년(1660)~1726년(1726))은 에도 중기의 외과의사.나가사키계 구리사키류의 의가백부 마사카츠(2대 도희)의 고제 도절에 대해 쿠리사키 유 외과를 다해 막부에 부름을 받아 관의가 된다.미치유를 습명, 이후 자손은 대대로 이 이름을 습명해, 쿠리사키류는 나라바야시, 요시오의 양가와 함께 나가사키 외과의 삼가라고 불렸다.1701년(1701), 요시라 우에노스케요시오의 전중 칼날상 사건 때 응급 치료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아사히 일본역사인물사전』에서)
대대로 구리사키 도유를 습명한 배령 저택은 하치초보리 나가사와초에 있었다고 한다.에도 후기의 절화도 복원원도(첨부도)에는 「외과의 구리자키 미치유」라고 있다.현재 위치는 핫초보리 3초메로 신오하시 거리와 대장간 교차점 부근이다.
요시라 우에노스케 요시오묘(사진 왼쪽)과 쿠리사키 도유묘(사진 오른쪽)은, 대나무 조동 종만창인 공운지(나카노구 가미타카다 4-14-1)에 있다.이 절은 원래 나가타초에 있고 이치가야를 거쳐 1913년(1913) 현재지로 옮겼다.기라가의 보리사에서 4대에 걸친 묘석이 있다.묘 앞에는 「요시라야 토사 충신묘지」가 있어, 요시라 요시오와 함께 죽은 가신들의 죽음은 「1702년 12월 15일 토사」라고 새겨져 있다.@마키부치 아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