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 그림이나 미인화, 풍경화, 요괴화, 희화, 동물화 등 폭넓은 장르에 걸쳐, 그 화풍에 이채를 발한 우키요 그림사·가가와 쿠니요시[우타가와·쿠니요시=1797년(1797)-1861년(1861)].혼은초(혼시로가네초)에서 태어나 만년에는 겐야점(겐야다나)에 살고, 종언의 땅이 되었다.현재, 「몰후 150년 가가와 구니요시전」(2월 12일까지, 롯폰기 모리아트 센터 갤러리)가 열리고 있다(사진상 왼쪽)니혼바시에서 걸작을 낳은 에도코 우타가와 쿠니요시가 지금 되살아난다.
언뜻 낙서풍으로 보이는 그림도 실은 배우 군중을 그린 것을 보는 사람은 알아버린다는 우스꽝스러운 반골혼을 나타내고 있다.사람의 모습을 모아 인물화를 만들어내는 등 기상천외한 화풍으로 웃음과 장난기의 세계를 천진난만하게 그려냈다.고양이를 소재로 한 작품도 많다.구니요시의 그림은 타운지 월간 <니혼바시>의 표지가 되어 있어서 친숙한지도 모른다.요즘 화제인 것이 「히가시토 미츠다랑이의 그림」(쿠니요시전에서는 후기 전시)로, 나카스에서 후카가와 방면을 바라보고, 높게 우뚝 솟은 망이 에도의 스카이트리인가, 라고 생각하게 하는 정경이다
여류 극작가의 하세가와 시우는 저서 「구문 니혼바시」에서, 쿠니요시에 대해서, 아버지(후카조)의 옛말로서 쓰고 있다.
「겐야점에 있던 쿠니요시가, 도요쿠니와의 합작으로 오구로와 에비스가 각력(스모)을 취하고 있는 곳을 써 주었지만, (아버지는) 6세나 7세였기 때문에, 몇 시 사이에 없어져 버렸다」 「쿠니요시의 집은, 간구가 2간, 안쪽 행운 집에서, 5칸 중, 앞쪽이 조금만 정원이 되어 있었다.밖에서 보이는 곳에 제자가 책상에 앉아 있고, 쿠니요시는 표면에 앉아 있는 것이 버릇이었다.도요쿠니의 다음 정도인 사람이었지만, 그런 생활이었다.(이와나미 문고판에서)부심조의 삽화 ‘우키요에사 쿠니요시의 주거’(부분=사진상 오른쪽)도 실려 있다.
1853년(1853), 57세 때 신와센초 겐야점(현·니혼바시닌가타초 산쵸메)에 거주해 1861년(1861) 이 땅에서 65세의 생애를 마감했다.현재, 겐야점터에는 주오구 교육위원회 설명판이 서 있지만, 구니요시의 기술은 없다(사진 아래 왼쪽)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