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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원조의 생애

[yaz] 2018년 1월 7일 18:00

2017년 11월의 블로그에서 「키노시타 키타로 기념관(이토시)을 방문한 것, 키노시타 키타로의 사람이 되어」를 소개했다.

/archive/2017/12/post-4762.html

 

이번은 "나가요바시"의 가교를 담당한 것으로 유명한 키노시타 모쿠타로의 4세 연상의 친형, 「오타 겐조」를 소개한다.

학창 시절에는 도쿄에서 동거도 하고 있던 사이가 좋은 형제였다.

기노시타 모쿠타로_가계도.jpg 오타 원삼_얼굴 사진.jpg

 

오타가의 차남 '고조'는 도쿄 제국 대학 토목공학과를 졸업 후 체신성 철도 작업국에 입국하여 교량 설계를 내밀어 보소선 공사나 조에쓰 시미즈 터널 공사 등을 담당했다.공사의 기계화와 노선의 도상 선정법의 도입 등 폭넓게 철도 기술의 향상에 공헌해 '철도 시작된 이래의 천재 기술자'로 불렸다.

 

1923년(1923년), 간토 대지진에 의해 괴멸적인 피해를 입은 도쿄를 부흥하기 위해 제도 부흥원이 설치되면서 토목국장에 임명되어 당초에는 미경험 분야 때문에 사퇴했지만, 절친한 친구 쥬카와 신지(전후 도카이도 신칸센 건설 기공시의 국철 총재)의 강한 권유에 의해 취임했다.교통망과 위생설비, 안전성, 경관 등을 갖춘 ‘문명적 도시·도쿄’를 목표로 했다.

*차사회의 도래를 눈 넘은 도로 등의 확장

*도지구획 정리

*나가요바시·기요스바시 등 지진 재해로 불타버린 것이나 신설 등 약 150개의 교량에 대해서,

 남동생·모쿠타로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기무라 소하치 등의 예술가의 의견을 듣고 경관에 배려한 가교를

 갔다.

 

이하의 그림은 영대교·기요스바시 등의 다리 디자인을 나타내고 있다.모두 기발한 디자인 때문에 채용되지 않았다.

스미다가와 부흥교 디자인군.jpg

 

*고속철도(지하철 9의 필요성을 설명해 철도망의 구체화에 진력했다.

(아래 그림의 철도망도는 작아서 역명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도덴·세이선(JR 야마노테선·츄오선 등)과 함께 메트로 긴자선·마루노우치선 등 고속철도(지하철) 등 장래를 바라본 철도망을 나타낸다.도자이선·히비야선 같은 것도 그려져 있다.)

고속철도망도.jpg

 

겐조는 현대까지 이어지는 근대 도시 도쿄를 디자인하고 그 초석을 쌓은 것이다.

 

제도 부흥에 심혈을 기울인 겐조였지만, 1926년 3월 21일, 중반에 자살했다.구획 정리에 대한 무리해·부흥국 의심옥 사건(토지 매수에 연루된 부패 사건)의 발각 등에 의한 심노가 쌓여, 돌발적인 사건이었다고 한다.

4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31년 스미다가와 아이오이바시 반나카노시마 공원에 초상 릴리프가 설치되었다.그러나 지진으로 파괴되었기 때문에 1955년 현재의 간다바시 공원으로 이축되었다.

"(겐조가) 만난을 물리치고 입안계획된 부흥사업은 어디를 끊어도 고인의 피가 흐르고 영혼이 살아갈 것이다"(전 철도대신노우에 타카사부로)

오타 원산기념비.jpg

 

형 겐조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쿠타로의 시가 잡지 《메이세이》 제8권 4호(1926년(1926년) 6월)에 게재되고 있다.

 

타이틀 “나가다이바시 공사”

지난날의 영대 기교는 아직 소년이었던 내게 얼마나 감격을 준다.

인생은 슬프고, 또 어색하고, 재미있으면, 부모, 형제에게는 숨긴 술 뒤의 마음으로, 전기적인 에도의 환상에 발허 위험해 바라보기도, 모습도 했다.

그것을, 아아, 그 대지진, 역겨운 포기.

그리고 전두의 백발을 신경쓰면서 다리에 가까운 기테이 창문에서 그 굉장한 신바시 건설 공사를 하면서 바라보았다.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시세는 넘어간다.

기초는 가능한 한 근세적 과학적으로 건축 양식에는 가능한 고전적인 장중의 취미를 도입해 주었으면 한다.

등 공상하고 마음먹었다.

그렇지만 같은 공사를 보면서 지금은 희망도 없고, 감격도 없고, 우하늘에 그 굉장한 울림을 듣고, 어차피 눈물이 난다.

그렇게 좋아했던 도쿄, 그리고 만만한 스미다의 나가레

인생은 슬프다, 여기는 삼계의 화택이라고 

-아 무서운 유전-아마 에도의 시대에 이 다리 위에서 누군가가 생각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과 같은 마음이 지금의 나에게 솟는다.

물은 곳곳에 움직이고 다리 또한 백년의 나이를 거듭할 것이다.

나의 지금 마음은 그저 물에 엎드려지는 구름의 그림자다.

 

가는 물에 젖어 자리잡고 있을까(1926년 5월)

 

 

어느 시대에도 「기초는 가능한 한 근세적 과학적으로 해, 건축 양식에는 가능한 고전적인 장중의 취미를 도입해 받고 싶다.」라고 하는 의견이 나오는 것은 보편적인 것이군요.동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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